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린 맥주 (문단 편집) == 역사 == [[1865년]] [[영국]]인 캠벨(Campbell)과 [[미국]]인 랭손(Langthorne)은 젊음의 패기 하나만 가지고 [[요코하마]]에서 통상 'No 123 Bluff'로 호칭되는 양조장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조장에 관해서는 양조장의 정확한 이름이나 설립자의 풀네임 등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정보가 미지로 남아 있는데, 그나마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 중 하나로, 설립 당시 양조장 옆에 [[샘]](泉)이 있어서 그 샘물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과 미대륙의 맥주가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이 양조장은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금방 문을 닫게 된다.[* [[https://zythophile.co.uk/2019/01/30/a-short-history-of-asahi-in-which-beer-gets-called-bitter-horse-piss-wine/|출처]]] [[1868년]] 또다시 요코하마에 선장 겸 상인 Marinus Johannes Benjamin Noordhoek Hegt가 세운[* [[https://beerandbrewing.com/dictionary/ZRvBahG5As/|어떤 기사]]에서는 Rosenfeld라는 사람이 세웠다고도 하는 등 설립자는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 'Japan Yokohama Brewery'가 [[독일]]계 [[미국]]인 에밀 비간토(Emil Wiegand)를 양조 장인으로 내세워 [[1869년]]부터 영업하게 된다. [[1869년]]에는 캠벨과 랭손이 설립한 'No 123 Bluff'가 망한 바로 그 자리에 [[노르웨이]]계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William Copeland)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의 노르웨이식 이름은 Johan Martinius Thoresen으로, 미들 네임이 [[https://www.maritimeheritage.org/vips/William-Copeland.html|Bartinius]]로 기록되는 경우도 있으나 당시에는 흔히 있던 오타로 추정된다. 이 사람은 행실은 상당히 얌전했으나 거의 항상 취해있는 음주광이었다고 한다.] 'Spring Valley Brewery'를 설립하였다. 이 양조장은 [[1870년]]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라거]]나 바바리안 [[에일]], 바바리안 [[맥주/종류#복|복]], 잉글리쉬 에일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WKKODwAAQBAJ&pg=PT232&lpg=PT232&dq=copeland+and+wiegand+beer&source=bl&ots=GSnMPjdP1K&sig=ACfU3U04_94pJ-TNm1DoBmdCGP17nJlYmA&hl=ko&sa=X&ved=2ahUKEwjempnd2uv1AhUOBZQKHTMNBuQQ6AF6BAhFEAM#v=onepage&q=copeland%20and%20wiegand%20beer&f=false|출처]]] [[1876년]], 코플랜드와 비간토는 연고지가 같아서 발생하는 과도한 경쟁을 회피하고자 합병하여 '코플랜드 앤 비간토 상회'를 만들고 협업하는 관계가 되었다. 코플랜드가 경영을 맡고, 일본에 오기 전부터 양조 장인으로 활동했던 비간토가 양조를 맡기로 하였으며, 코플랜드의 기존 'Spring Valley Brewery'는 맥주 양조장(브루어리)으로 사용하고, 비간토의 기존 'Japan Yokohama Brewery'는 맥아 제조소(몰트하우스)로 사용하기로 합의하며 장사를 시작하였으나,[* [[https://rekishinihon.com/2020/03/29/history-of-kirin-beer/|당시 맥주의 상표]]를 보면 두 사람이 협업한 흔적이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 해 맥아 제조소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협업 관계는 얼마 가지 않아 깨지게 되고 피해를 수습하는 와중에 시장 안착에도 실패하면서 결국 [[1884년]] 회사가 [[파산]]하여 코플랜드는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후 이 몰락한 양조장이 [[1885년]] 주류 사업에 뛰어들고자 했던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재벌]]의 2대 총수인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弥之助)의 눈에 띄게 되었고,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의[* 사실상의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 사람이 맞다!] 도움으로 결국 인수되어 'Japan Brewery'가 되었다. 이 회사가 [[1907년]] 현재의 상호인 기린맥주(麒麟麦酒)로 바뀌게 되고, 이후에는 미쓰비시 계열사 메이지야스다 생명보험을 통해 미쓰비시 그룹이 주주로 남아있게 되면서 범 미쓰비시 그룹의 계열사가 된다.[* 또한 미쓰비시와 함께 '금요회' 라는 그룹에 회원사로 소속되어 있어서 자본 외의 관계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 2차 대전 전에는 [[OB맥주]]의 전신인 쇼와기린맥주에 대주주로서 출자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주회사로 전환하여, 기린홀딩스 - 기린주식회사 - 기린맥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로 개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